2023년 1월 성남교회 청년직장인 온전케 하는 집회

다음세대

다음세대는 회복의 장래! 시대를 전환하는 사무엘과 같은 다음세대

2023년 1월 성남교회 청년직장인 온전케 하는 집회

23년 1월 15일 성남교회 청년직장인 온전케하는 집회를 하였습니다.

제 15장 그 땅에서의 생활

 우리는 그 땅에 들어갔다. 모든 적들을 패배시키고 굴복시켰다. 우리는 그 안에 살고 있다. 이제 우리는 그 땅에서 어떠한 생활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알아보아야 한다.
 주님의 종인 모세가 신명기를 쓸 무렵... 모세는 그들의 장래를 지극히 관심하였고, 특별히 그들이 그 땅을 소유한 후의 생활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는 마치 자라나는 자녀들에게 지혜와 사랑의 말로 권면하는 나이 든 아버지와 같았다. 모세의 말은 주님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에서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 주의하지 않으면 그 땅을 잃어버릴 것이라는 충고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려놓은 부담이자 이 책에 기록된 내용이다.
 신명기는 그 땅을 소유한 후 그 땅 안에서의 생활을 다룬다. 바꿔 말해서 그것은 우리가 소유한 것을 누리는 생활을 보여 주고 있다. 우리는 그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소유했다. 이제 그 땅을 누리고 그 땅에서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스도에 대해 수고함
 그러면 그 좋은 땅을 누리는 데 필요한 생활은 어떤 것인가? 그 생활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에 대해 수고하는 생활이다. 그 생활은 바로 그리스도를 우리의 산업으로 삼는 생활이다.
 여러분은 무엇을 위하여 수고하고 있는가? 다시 말해서, 여러분의 직업은 무엇인가?
학생인 여러분은 공부하는 동안에도 자신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공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체험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산업이시다. 트럭 운전사인 여러분은 트럭 운전이 여러분의 참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여러분의 참 직업은 그리스도이다. 가정주부인 여러분의 참 일은 집과 가족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여러분은 항상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고 있는가? 모든 상황에서 그리스도를 누리고 그분을 체험하고 있는가?
 우리는 그 좋은 땅이 여러 면에서 얼마나 풍성한지를 보았다. 그러나 그 땅을 위하여 수고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 땅의 풍성이 산출되고 충분히 생산되겠는가? 풍성하신 그리스도를 소유하는 것과 계속해서 이 그리스도에 대해 수고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그리스도는 측량할 수 없이 부요하시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빈곤 가운데서 천박하게 행동하고 있다. 왜 그런가? 그것은 오늘날 주님의 자녀들이 나태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에 대해 수고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세상 산업에는 너무나 분주하면서도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너무 게으르다.
 우리는 우리의 영적인 땅을 경작해야 한다. 영적인 씨앗을 뿌려야 하고 영적인 나무에 물을 주어야 한다. 자매들이여, 여러분은 오늘 아침 말씀을 기도로 읽었는가? 형제들이여, 오늘 몇 번이나 주님을 접촉했는가? 이것이 바로 우리의 상황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경작하지 않는다. 우리는 너무나 기름진 땅을 소유하고 있지만 그 땅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소출이 조금도 없다. 자원은 실로 풍부하지만 생산은 얼마나 빈곤한가!
 형제자매들이여, 우리는 집회에 올 때마다, 주님을 경배하러 올 때마다 빈손으로 와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한아름 가지고 와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에 충분한 그리스도로 만족하지 말고, 그 이상의 그리스도를 생산해야 한다. 우리는 가난하고 궁핍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충분하고 넘치도록 주님을 생산해야 한다.

그리스도에 대해 수고하는 법
매일 아침 여러분은 “주님, 당신을 위하여 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 자신을 누리기 위하여 나 자신을 당신께 다시 한번 헌신합니다.”라고 기도할 필요가 있다.
여러분은 새벽에 깨어나는 순간부터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당신을 누리기 위해 자신을 드립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온종일 모든 환경 가운데서 당신을 체험하고 당신만을 적용하게 하소서. 내일의 일을 위해서도 구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하루 당신을 누릴 수 있도록 은혜를 구합니다. 주여, 당신의 땅을 경작하고, 씨를 뿌리며, 주님의 농작물에 물을 주는 법을 보여 주소서.”라고 기도할 필요가 있다. 그럴 때 여러분은 온종일, 순간순간, 주님과의 교통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주님 안에 살며, 주님을 위하여 일하고, 주님을 적용하며, 주님을 누리게 될 것이다. 만일 이렇게 한다면 여러분의 ‘농장’은 열매가 얼마나 많고 아름답겠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게으를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그리스도를 누리시도록 해야 하고, 동시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리스도를 누리시도록 해야 한다. 만일 여러분이 이렇게 하고 또 내가 이렇게 하고 우리 모두가 이렇게 한다면, 함께 모일 때 우리의 집회는 얼마나 놀랍겠는가!

그리스도를 전람함
 형제자매들이여, 우리의 집회는 그리스도의 온갖 종류의 산물이 전시되는 전람회, 박람회가 되어야 한다. 교회생활은 바로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함께 그리스도를 누리는 생활이다.
주님의 백성들의 경배는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로 충만하고, 그리스도로 빛나며, 그들이 수고하여 얻은 그리스도를 전람하는 것이다. 한 형제는 “여기 제가 수고하여 얻은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그분은 이런 점에서, 또 저런 점에서 참으로 풍성하십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떤 자매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나는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그리스도의 인내와 친절함을 체험했습니다. 그분은 저에게 이렇게 달콤하고 실제적인 분이 되셨습니다.”라고 증언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그녀가 수확한 그리스도이다. 모든 사람이 자신이 수확한 그리스도를 전시한다. 이것은 하나님께는 놀라운 경배요, 성도들에게는 공급이며, 사탄에게는 수치이다. 이러한 집회는 하늘에 있는 정사와 권세들에게는 대단히 당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악한 세력들은 그러한 그리스도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다. 형제자매들이여, 여러분은 자신의 지방에서 이런 집회를 하고 있는가?

그리스도를 누리는 두 가지 길
신명기에 따르면, 그리스도를 누리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개인적인 길이라 할 수 있고, 다른 하나는 단체적인 길이라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밀이나 보리 같은 곡식에 관해서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은 언제 어디서나 그것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떤 곡식은 개인적으로나 혼자서 누릴 수 없었다. 곡식의 십분의 일과 첫 열매는 다른 소산물의 십분의 일과 첫 열매와 함께, 따로 보관하여 하나님께서 택하신 제사장에게로 정해진 날 가져가야 했다.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 즉 하나님의 거처가 있는 곳으로 가져가야 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과 하나님 자신과 함께 그것들을 누려야 했다. 이것이 단체적인 경배였다.
그리스도를 혼자서 개인적으로 누리는 것은 어디에서나 허용된다. 이것에 관하여 우리에게는 완전한 자유가 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주님의 자녀들과 함께 그리스도를 누림으로써 하나님께 경배하고 싶다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바로 그곳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주님의 자녀들의 합일을 지켜주기 때문이다.

신명기 12장 5~8절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거하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너희 번제와 너희 희생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우양의 처음 낳은 것들을 너희느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거기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을 인하여 너희와 너희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 우리가 오늘날 여기서는 각기 소견대로 하였거니와 너희가 거기서는 하지 말지니라.

우리가 선택한 곳에서는 주님의 자녀들과 함께 모여 단체적으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없다. 우리는 주님께서 선택하신 한 장소, 한 중심지, 합일의 한 터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날의 상황은 얼마나 반대되는가! 한 지방에만도 소위 교회라 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헤아리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나는 주님의 모든 자녀들에게 “여러분에게는 선택권이 없습니다!”라고 크게 외치고 싶다. 한면에서 여러분은 어디에 있든지 홀로 그리스도를 누릴 자유가 있다.  그러나 여러분이 주님을 경배하기 위해 주님의 자녀들과 함께 모일 때에는 자유가 없다. 주님의 자녀들이 모이는 곳은 주님 자신께서 지명하신 바로 그곳이어야 한다. 우리는 그곳으로 가지 않으면 안된다.
 여러분과 나는 하나님의 규율에 의하여 제한을 받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경배하기 위한 또 하나의 중심을 세울 권리가 없다. 그것은 주님의 자녀들 가운데 분열만을 일으킬 것이다. 우리가 취하고 서 있어야 할 유일한 터는 합일의 터뿐이다. 혼자서는 어디에서나 그리스도를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절대로 다른 형제자매들과 함께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리스도를 누리기 위해 어떤 곳에 또 다른 중심을 세워서는 안된다.
 우리는 모두 주님께서 정하신 곳으로, 주님께서 그분의 이름을 두신 곳으로, 그분의 거처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온 우주 가운데 주님의 몸은 오직 하나요, 주님의 거처도 오직 하나이다. 그러므로 각처에 몸의 표현도 하나이어야 한다. 이것이 기본적인 원칙이다.

링크#1. 집회 녹화 영상
첨부파일. 15장 그 땅에서의 생활 메시지 발췌문

*성남교회 청년직장인 온전케하는 집회는 23년도 2월까지만 진행하고, 3월부터는 월 1회 청년직장인 오프라인 섞임으로 진행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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